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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그리스 신화 - 제우스

by 미네R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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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라는 이름은 번쩍이다 와 하늘을 뜻하는 인도유럽어족의 어근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이름은 낮 또는 낮의 빛을 가리키는 라틴어 dies와 같은 어근의 옛 형태인 dyews와 상응한다. 따라서 제우스는 근본적으로 빛의 신이자 빛나는 하늘의 신으로, 대기 현상이 일어나는 공간을 주간한다. 대기 현상인 기후는 인간들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제우스는 자신의 권능을 과시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자리 잡았다. 그가 사는 올림포스 산은 에게 해를 굽어보는 높고 험한 산이다. 그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자신이 주관하는 대기 현상을 통제했다. 그는 구름을 모으고 천둥과 번개를 내리쳐 날씨를 다스린다. 또 고대인들은 독수리가 제우스의 번갯불을 나른다고 믿었다. 하늘의 신 제우스는 천둥과 번개 외에도 눈, 비, 가뭄 등 모든 기상 사태를 주관했다. 농경 사회인 고대의 생활에서 자연현상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날씨 때문에 풍년과 흉년이 드는 만큼 그해의 수확은 제우스에게 달려 있었다.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후의 신 제우스는 농작물의 생산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헤시오도스는 '일과 나날들'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는 대지를 주관하는 제우스와 데메테르에게 기도하라고 권했다. 날씨를 주관하는 천신인 제우스가 농사와 그 생산성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이다. 기후와 풍년의 신 제우스는 셈족인 가나안 사람들이 살았던 시리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숭배되던 천둥과 번개의 신 바알과 유사하다. 그리스의 문화와 신화가 이웃 지역인 근동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를 납치해서 크레타로 데려갔는 이야기는 그리스가 가나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대목이기도 하다.

 

풍년을 주관하는 제우스는 집안의 재산을 거두어들이고 보관하는 것도 보살핀다. 그는 곳간에 앉아 재산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가정의 부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그는 집의 안마당에 자리 잡고 집안의 무사태평과 번영을 주관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기적으로 안마당에 제사상을 차리고 제우스에게 제사를 올렸다. 도시 국가의 궁전 안뜰에 제우스 제단이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우스가 가진 여러 덕목 가운데는 사람들의 잘못과 오점을 씻어내는 정화의 능력이 있다. 타락과 과오로 더러워진 정신을 정화하는 제우스를 찬양하며 제물을 바치는 숭배 의식이 도시 바깥 넓은 터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지난날의 행동을 속죄하고 스스로 정화하여 새 삶을 찾으려는 간들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시니스라는 강도를 죽인 테세우스도 제우스 제단에서 죄를 씻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아버지 제우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 말은 라틴어 유피테르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그리스 민족은 기원전 2000년경에 그리스 땅으로 이주한 인도유럽어를 쓰던 아리안족으로, '아버지 제우스'라는 표현은 그들이 이주하기 오래전부터 '하늘 신'을 가부장적인 신으로 믿어온 인도 유럽인의 오랜 관행에 바탕한 것이다. 제우스가 인도유럽어를 쓰던 종족에게 모든 영역에서 가부장적인 권위를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 친척의 의무와 권리를 감시하고 특히 결혼 생활을 수호하는 신이다. 그는 또한 왕에게 왕권의 상징인 왕 홀을 건네주고 왕권을 수호하는 신이며, 나중에는 도시의 수호신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수호신으로서 그는 시민을 계도하고 시민의 자유를 지켜준다. 그는 그리스에 머무는 이방인의 권익 보호에도 관심을 보여 아테네에는 '거류 이방인의 제우스'도 있었다. 한편 제우스는 정의를 수호하고, 폭력이나 협잡에 의한 권리 침해를 보호했으며, 모든 좋은 율법의 아버지였고 청원자의 대부였으며, 이방인과 거지를 보살피는 수호자였고, 맹세와 약속을 주관하여 당사자들이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갖도록 했다.

 

제우스는 기후와 관계되는 자연현상을 주관했기 때문에 천둥, 번개 등으로 사태의 전조를 알리거나, 꿈을 꾸게 하거나, 말소리를 들려주거나, 새들이 나는 모양을 통해 예언을 했다. 제우스 신전들 중 가장 유명한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은 제우스의 예언을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제들이 특히 제사를 올리며 제물을 불태울 때, 타오르는 불꽃 모양을 보고 제우스의 예언을 해석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예언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바로 도도네였다. 이곳에선 커다란 떡갈나무의 성스러운 잎사귀들을 보고 제우스의 예언을 해석했다. 오디세우스도 여기에 와서 예언을 들었고, 헤라클레스도 여기에서 예언을 들었다. 나뭇가지의 모양과 그 소리로 예언을 풀이하는 수목점은 때때로 비둘기 같은 새들의 나는 모습을 함께 해석함으로써 더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하곤 했다. 도도네에서는 이 밖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제우스의 예언을 해석했는데, 그중에는 사제들이 발을 닦고 모든 예언의 근원인 땅 위에 누워 제우스의 신탁을 받는 것도 있었다.

 

몇몇 영역에서 제우스는 다른 분야를 관할하는 신들과 일종의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아폴론의 예언술, 데메테르의 농경, 아테나의 정치 문화의 영역은 제우스가 관할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늘의 신으로서 총체적인 역할을 할 뿐이었고 각 분야의 전문적인 신들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우스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에 높은 왕좌에 앉아 모든 것을 통치했다. 제우스는 세계를 창조한 신도 아니고 최초의 인간을 창조한 신도 아니었지만, 그 힘과 권력은 다른 모든 신들을 압도했다. 그가 올림포스의 신들을 모아놓고 자신 있게 일장 연설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의 힘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잘 들어라. 내 말을 어떤 신이든 내 말을 어기려 들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신들 가운데서 내 힘이 얼마나 큰지 한번 시험해 보려무나. 황금 밧줄을 하늘에서 늘어뜨려 신들이 모두 매달려 봐라. 그래도 나를 땅으로 끌어내리진 못할 것이다. 모두들 제아무리 안간힘을 쓴다 해도, 내가 만일 정말로 끌어당기려 든다면, 그야말로 땅째로, 아니 바다까지도 모조리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밧줄을 올림포스의 뾰족한 봉우리에 둘둘 감아두면, 모든 것이 허공에 매달리고 말 것이다."

그의 말에 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의 전횡적인 통치와 바람기를 참다못한 아내 헤라가 아테나와 아폴론,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제우스가 잠든 사이 그를 묶어 버리기도 했지만,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백수 거인 삼 형제 중의 하나인 브리아레오스 혹은 아이가이온을 불러 그들의 음모를 무산시켜 버렸다. 제우스는 감사의 표시로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인간들 중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제우스는 대단한 권위주의자였기 때문에 헤라와 부부 싸움을 하는 중에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어머니의 편을 들자 아들의 발을 잡아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헤파이스토스는 하루 종일 하늘을 날다가 해질 무렵에야 렘노스 섬에 떨어졌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인간들도 신들과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지침을 따라야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궁전 안뜰에 두 개의 단지를 파묻어 놓았는데 그 속에는 선과 악들이 들어 있었다. 제우스는 그것을 퍼내어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가 선과 악을 섞어 나누어 주는 것을 받은 인간은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악만을 받은 사람은 평생 끼니를 걱정하며 유랑하는 저주받은 인생을 살게 된다.

 

한편 제우스는 두 전사나 두 민족이 대결을 벌일 때 전세가 백중지세에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운명의 저울을 들고 그들의 생과 사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트로이 전장에서 헥토르나 사르페돈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제우스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을 구하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는 참았다. 세계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기 싫어서였다. 제우스는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에게 세계의 지배와 통치에 필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특정 인물을 살리기 위해 모이라이에게 청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이라이의 역할에 간섭하는 것은 그들에게 운명을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한 신들과 스스로를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우스는 자제하고 조심했다.

 

 

이진성 - 그리스 신화의 이해,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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