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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그리스 신화 - 제우스의 애정 행각 2

by 미네R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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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인간들에게도 접근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여성들에게 접근하면 공포감을 줄 우려가 있어 여러 가지 모습을 변신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들은 '제우스의 자손'이라는 이름 아래 귀중한 혈통으로 자처하고, 그 지역의 시조가 되어 계보를 형성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있어 우스꽝스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코린토스의 시조가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주장은 그리스 전역에서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리스의 훌륭한 종족이나 가문들은 대체로 제우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혈통이었다. 예를 들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여러 도시의 창건자들은 제우스의 후손이었다. 아르골리스 지역의 이름난 왕가인 아트레우스(Atreus) 가(家)의 시조 탄탈로스(Tantalos)는 제우스와 플로토(Plouto)의 아들이었다. 아르카디아 지역 또한 제우스와 요정 칼리스토(Kallisto)의 아들 아르카스(Arkas)를 시조로 모셨다. 라코니아 지방의 스파르타 사람들은 제우스와 요정 타이게테(Taygete) 사이에서 태어난 라케다이몬(Lakedaimon)을 자신의 조상으로 생각했다. 한편 아르골리스 지역은 제우스 혈통이 중복해서 등장하는 유명한 고장이다. 제우스와 니오베(Niobe)의 아들 아르고스(Argos)가 이 고장을 세우고, 제우스와 다나에(Danae)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가 이 지역에 다시 제우스 혈통의 가문을 세웠기 때문이다. 테바이의 건설자 카드모스(Kadmos)는 제우스와 이오(Io) 사이에서 태어난 에파포스(Epaphos)의 증손자이며, 제우스는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를 사랑하여 디오니소스(Dionysus)를 얻는다. 크레타 섬은 에우로페(Europe)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미노스(Minos), 사르페돈(Sarpedon), 라다만티스(Rhadamanthys) 삼 형제를 시조로 모신다. 제우스는 요정 아이기나(Aigina)와 관계해 아이아코스(Aiakos)를 낳는데, 그는 후일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Aias)를 배출하는 프티아 지방과 아이기나 섬의 시조가 된다. 트로이 사람들은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엘렉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다르다노스(Dardanos)를 조상으로 섬겼다. 이처럼 그리스의 오래된 도시와 왕족들은 대체로 자신의 혈통을 제우스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리스의 민족학적 인종의 시조인 이온, 아이올로스, 도로스 등은 제우스가 아니라 데우칼리온과 피라의 자식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인종들 중 가장 나중에 들어온 도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도로스뿐만 아니라 제우스 또한 섬기게 되는 특이한 전설을 갖고 있었다. 도리아인들이 그리스 본토 북부에 자리 잡았을 때 그들은 이웃의 라피테스(Lapithes)족과 싸워야 했지만, 다행히 헤라클레스(Heracles)의 도움으로 잘 버틸 수 있었다. 감사의 표시로 왕은 그에게 자신의 왕국 3분의 1을 주었지만, 헤라클레스는 그 영토를 후일 자신의 자식들에게 넘겨주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아들 힐로스(Hyllos)는 왕의 두 아들이 차지하고 남은 3분의 1을 다스리면서 할아버지인 제우스 혈통이 뿌리내리게 했다.

 

제우스의 변신술은 유명하다. 그는 인간 여자들뿐만 아니라 요정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곧잘 동물로 변신했다. 에우로페를 사랑하기 위해선 황소로 변신했고,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Leda)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백조로 변신해 사랑을 나누었고, 그로부터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Hellene), 그리고 디오스쿠로이(Dioskouroi)라고 불리는 카스토르(Kastor)와 폴리데우케스(Polydeukes) 형제를 낳는다. 제우스는 자신의 여신들도 동물로 변신시켰는데, 요정 칼리스토는 곰으로, 이오는 암소로 변하게 했다. 이로부터 고대 사회에선 동물숭배가 비롯되기도 했는데, 동물 형태 속에 제우스의 신성이 숨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또 제우스는 인간으로도 변신했다. 한 번은 테바이의 왕 암피트리온(Amphitryon)의 아내 알크메네(Alkmene)에게 접근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해 알크메네와 동침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전장에서 돌아온 암피트리온이 아내 알크메네와 부부 관계를 맺는다. 하루 사이에 두 번 맺은 사랑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와 암피트리온의 아들 이피클레스(Iphikles)다. 또 제우스는 감옥에 갇힌 다나에(Danae)에게 접근하기 위해 황금 빗물로 변신하기도 한다. 천장 틈새를 통해 감방으로 들어간 그는 다나에와 사랑을 나누어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감옥의 자물쇠치고 황금 앞에 열리지 않는 법은 없다. 제우스가 황금 빗물로 변신해 천장 틈으로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는 황금의 위력에 대한 통찰을 다나에와의 사랑에 섞어 재미있게 엮어낸 것이다.

 

제우스는 미소년도 사랑했다. 트로이 왕 다르다노스에게는 가니메데스(Ganymedes)라는 아름다운 아들이 있었다. 이 소년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우스는 독수리로 변신해 그를 납치한 후 올림포스로 데려와 신들의 술 시중을 들게 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사랑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쓰라린 상처가 있었다. 제우스는 테티스를 좋아했지만 그녀와 결합하면 자기보다 훌륭한 아들을 낳을 운명이었기 때문에 테티스와의 결합을 포기하고, 테티스가 행여 다른 신과 결혼해 강력한 아들을 낳을까 두려워 테티스를 인간 펠레우스(Peleus)와 결혼시켰다. 그로부터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과연 불후의 명장이 되지 않았는가? 제우스의 두 번째 좌절은 요정 아스테리아(Asteria)가 제우스를 거절하고 도망가다가 유성처럼 바다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녀는 죽어서 델로스(Delos) 섬이 되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벌로 델로스 섬을 아무도 찾지 않는 불모의 섬으로 만들었다.

 

제우스의 애정 행각과 그로부터 나온 자손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이야기들은 각 지역과 귀족들이, 혈통을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의 관습에 따라 앞다투어 최고의 신 제우스를 조상으로 삼기 위해 제우스를 아내 헤라의 눈을 피해 바람을 피우는 신으로 만든 것이고, 아울러 그것은 왕의 통치권 합리화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이 세계의 지배자인 제우스의 자손으로 자처함으로써 자신이 당연하게 왕권을 물려받았음을 주장하는 것은, 중세 이후의 절대 군주 옹호론인 왕권신수설로까지 발전되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제우스의 애정 행각 속에는 기후가 지배하는 농경 사회의 다산과 풍년에 대한 뿌리 깊은 소망이 숨겨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기후와 풍년의 신 바알을 숭배한 가나안 사람들은 성적 결합 의식을 통해 다산과 풍년을 기원했다. 성적 결합이 밭에 씨 뿌리기와 같다고 생각한 그들은 성적 결합의 번성함이 다산과 풍년을 약속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알처럼 천둥과 번개의 신이자 기후와 풍년의 신 제우스는 애정 행각이라는 씨 뿌리기를 통해 다산을 실현하면서 풍년을 기약했고 아울러 여러 지역의 왕권과 명망 있는 가문의 조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스 전역에 광범위하게 전파된 제우스 숭배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고 출처가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얽혀 있어 제우스 신앙의 깊고 넓은 폭을 실감 나게 한다. 호메로스가 말하는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크레타 섬 미노아 문명에서 섬겼던 제우스와는 다르다. 크레타 섬의 제우스는 쿠레테스족의 보호 아래 자란 젊은 신으로, 대지의 여신의 아들이자 연인으로 자리 잡는다. 크레타의 젊은 제우스는 에게 해의 다른 곳으로 전파되지만, 가령 아르카디아 지방이나 프리기아(Phrygia) 지역의 제우스와 동일하지는 않다. 지역마다 고유한 민속적인 요소를 전 그리스적인 전지전능한 최고의 신 제우스에 투사해서 해당 지역에 맞게 적절히 소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선호하는 그리스인들이 하나로 통일된 신학적인 일관성을 갖는 제우스를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진성 - 그리스 신화의 이해,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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