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그리스 신화 - 헤라

by 미네R 2022. 10. 14.
반응형

헤라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이며 제우스의 누이지만 아버지 크로노스가 몰락하자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에 의해 변방에서 양육된다. 후일 메티스와 테미스에 이어 제우스의 세 번째 부인이 된다. 제우스와의 사이에서는 아레스, 헤베, 에일레이티이아(Eileithyia)를 낳는다. 헤파이스토스 역시 둘 사에서 태어난 아들로 이야기되지만, 제우스가 혼자서 처녀 신 아테나를 낳자 화가 난 헤라가 복수심에 불타 혼자 힘으로 잉태해 낳은 아들이라는 이설도 있다. 또한 제우스를 괴롭히려고 튀폰도 혼자 힘으로 낳았다고 『호메로스의 찬가』는 말한다. 기간테스와의 전쟁에 참전한 것과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이아손을 도와준 것을 제외하면, 헤라에 관한 전설은 모두 제우스와의 수월치 않은 부부 생활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로 점철된다.

 

자신의 결혼 생활은 힘들었지만, 헤라는 무엇보다도 결혼 생활을 수호하는 여신이다. 올림포스의 가장 위대한 신의 아내로서 헤라는 올림포스 궁전의 여왕일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과 결혼한 여인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 여신이었다. 헤라의 딸 에일레이티이아도 여인들이 아이를 낳을 때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올림포스 최고신의 아내로서, 그리고 궁전의 안주인으로서, 결혼을 수호하는 것은 헤라의 당연한 역할이었다. 모든 아내들의 모범인 헤라는 백옥같이 흰 팔과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과는 달랐다. 헤라는 제우스의 사랑밖에 모르는 단정하고 고상한 매력을 풍겼다. 지체 높은 안주인이 갖추어야 할 단아한 모습은 모든 아내와 약혼녀의 이상적인 본보기였다. 게다가 헤라는 '결혼 생활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헤라는 아내로서 항상 신부 같았다. 헤라는 매년 나우플리온(Nauplion)에 있는 카나토스(Kanathos) 샘에서 목욕을 하고 처녀성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결혼 생활을 수호하는 여신답게 헤라는 제우스의 계속되는 바람기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제우스가 관계한 여인들에게 강한 질투심과 복수심을 퍼부었다. 레토(Leto)가 제우스와 관계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으려고 할 때도 레토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헤라의 분노가 두려워서였다. 황폐하기 그지없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던 델로스 섬만이 레토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주었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이오(Io)는 헤라에게 쫓겨 소의 모습으로 변해 도망 다녔다. 헤라는 눈이 100개 달린 괴물 아르고스(Argos)를 동원해 이오를 감시하기도 했다. 그러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의 100개의 눈을 잠들게 한 뒤 죽여버렸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공작의 꼬리에 붙여주었다. 아르고스가 죽자 헤라는 다시 이오에게 등에를 보내 몸을 물어뜯게 해 괴롭혔다. 박해를 당하던 이오가 이집트에 도착하자 제우스는 이오를 다시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이집트에서 이오는 이집트의 왕이 되는 에파포스(Epaphos)를 낳았다.

제우스와 관련해 디오니소스를 낳은 세멜레를 죽게 만든 것도 헤라였고 디오니소스를 한때 미치게 만든 것도 헤라였다. 결혼 생활의 수호신으로서 헤라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Paris)가 메넬라오스(Menelaos)의 부인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가자 트로이를 공격하는 아카이아(그리스)군을 편들어 파리스뿐만 아니라 트로이까지 응징했다.

 

한편 헤라는 땅의 다산성을 주관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암소 눈의 헤라'라는 표현이 농사일을 돕는 암소를 상기시키듯이, 부부 관계를 주관하는 헤라는 농사에 필요한 가축들의 결합도 주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헤라(Hera)'라는 이름은 '땅'을 뜻하는 'ge'의 옛 동의어이기도 하다. 또 헤라는 땅속에서 자라는 뱀과도 관계가 깊다. 헤라클레스가 퇴치하게 되는 레르네의 '히드라'라는 뱀도 헤라가 길렀다고 전해진다. 땅의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헤라는 여인네들의 분만을 도와 다산성을 높였다. 분만을 주관하는 에일레이티이아가 헤라의 딸인 것도 그 때문이다. 헤라클레스가 죽어서 승천했을 때에는 헤라가 그를 품에 안고 그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의식을 거행한 다음 젖을 먹였는데 그때 헤라의 젖가슴에서 흘러내린 젖이 하늘의 은하수가 되었고, 땅으로 떨어진 젖은 백합꽃을 피어나게 했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은 기원전 3세기부터 영향력이 확대되는데 신화 역시 철학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이 시기의 스토아 철학은 신화를 통해 세계의 현상을 설명했다. 스토아 철학은 신화가 합리적인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이성'의 추상적 원칙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즉자'이며 '빛'인 반면, 헤라는 빛을 감싸고 보호해 주는 '공기'로 보았다. 그들은 빛과 공기가 합쳐져야만 생명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헤라의 젖에서 나와 창공을 가득 메운 은하수를 헤라의 거처로 생각하는가 하면, 여성들을 돌보는 헤라의 임무가 여성의 생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달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헤라의 여성의 별인 달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또 헤라는 암소와 공작을 통해 상징되기도 한다. 헤라의 신전은 헤라가 총애하는 도시 아르고스에 세워졌다. 헤라 신앙은 아르고스 및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물론 그리스 전역에 전파되었다.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p1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