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는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로 순결한 사냥의 여신이다. 아폴론의 여성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면이 많다. 활을 들고 다니며 여인들만 쏘는데 특히 아이를 낳는 여인들을 쏘아 갑자기 죽게 한다. 아폴론이 햇빛의 신이듯 아르테미스는 달빛의 신이다. 그러나 아폴론이 태양신 헬리오스가 아니듯이 아르테미스 역시 달의 신 셀레네는 아니다.
아르테미스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동생 아폴론을 낳는 것을 도왔다. 아르테미스는 평생 순결을 지키며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사냥을 하며 살았다. 숲이나 산의 계곡, 들판이 그녀의 거처였다. 그녀가 처녀의 순결을 지킨 것은 어렸을 때 제우스에게 처녀로 지내겠다고 서약했기 때문이지만, 햇빛의 신 아폴론과 짝을 맞춘 달빛의 여신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있다. 고대인들은 해와 달은 하늘에 떠 있는 고고한 한 쌍의 형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해는 가부장적인 전권과 자유를 구가한 반면, 달은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고대인의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 순결을 지키는 아르테미스였기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여사제나 요정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가차 없이 징벌했다. 요정 칼리스토가 제우스에 의해 임신하자 아르테미스는 화를 참지 못하고 활을 쏘아 죽였다. 놀란 제우스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변하게 한 뒤 하늘로 끌어올려 '곰' 별자리가 되게 했다. 또 어 날 거인 사냥꾼 오리온(Orion)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그가 자신을 욕보이려고 하자 전갈(skorpios)을 시켜 오리온의 발뒤꿈치를 물어 죽게 했다. 죽은 오리온은 하늘의 '오리온자리'가 었고, 전갈은 '전갈자리'가 되었다. 이들은 달빛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함께 밤하늘에 떠 있다.
아르테미스는 사냥을 즐기다가 땀이 많이 나면 숲속에서 요정들과 목욕하는 것을 즐겼는데, 사냥꾼 악타이온(Aktaion)이 우연히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몸을 보인 순결의 수호 여신은 분노에 차서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악타이온의 50마리나 되는 사냥개들을 주인도 몰라보게끔 난폭하게 만들어 주인을 잡아먹게 했다.
그런 아르테미스였지만 순결을 지키는 젊은 남녀는 극진히 보살폈다. 판다레오스(Pandareos)의 딸들이 고아가 되었을 때 아르테미스는 다른 여신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며 그녀들에게 '우아함'을 선물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며 여자를 멀리하고 순결을 지키면서 자연을 벗 삼아 사냥을 즐기던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Hippolytos)를 총애하고 가련히 여긴 일을 유명하다. 히폴리토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혐오했다. 모욕을 느낀 아프로디테는 그 벌로 테세우스의 두 번째 아내 파이드라(Phaidra)가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히폴리토스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해 모욕을 느낀 파이드라는 남편에게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며 자신이 일부러 찢은 옷과 부순 문짝을 보여준다. 분노한 테세우스는 차마 직접 아들을 죽일 수 없어 포세이돈에게 부탁한다. 히폴리토스가 전차로 트로이젠(Troizen) 바닷가를 달릴 때 포세이돈이 보낸 괴물이 바다에서 나왔다. 말이 놀라는 바람에 전차에서 떨어진 히폴리토스는 발이 고삐에 걸려 바위로 끌려가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파이드라는 죄책감을 못 이겨 목을 매달고 만다. 아프로디테의 술책에 희생된 히폴리토스를 가엾게 여긴 아르테미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부탁해 그를 부활시켰지만 제우스는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벼락으로 내리쳐 아스클레피오스를 죽게 했다. 트로이젠에는 아르테미스가 순결을 지키다 죽은 자신의 열렬한 추종자 히폴리토스를 불사의 신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아르테미스는 순결의 수호 여신으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는 정반대이다. 아르테미스는 여전사 집단인 아마조네스의 후견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순결 보호와 징벌은 결혼 전에만 해당되고 결혼 후에는 오히려 여인의 분말을 도와준다.
아르테미스는 순결한 야생의 장소인 숲과 산, 들을 돌아다니면서 활을 쏘고 사냥을 즐긴다. 아름답고 날렵한 여신은 휴식을 취할 때에는 요정과 강물에서 목욕을 즐긴다. 그럴 때면 사슴, 토끼, 새끼 사자 등이 여신을 에워싼다. 아르테미스는 문명화된 도시의 신이 아니라 '바깥'의 신이며, 처녀지와 야생의 장소를 무대로 한다. 이 여신의 주위에는 디오니소스처럼 항상 시끌벅적하게 젊은이들과 동물들이 모이며, 아르테미스는 그들을 이끈다. 들짐승의 수호 여신인 아르테미스지만 모순되게도 사냥을 즐긴다. 특히 사슴 사냥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들짐승의 번식을 주관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아르테미스는 순결을 잃지 않은 처녀 신이지만, 인간의 출생과 성장을 돕기도 한다. 처녀이면서 이처럼 모순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연유는 그녀의 출생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어머니 레토가 그녀와 아폴론 쌍둥이 남매를 낳으려고 했을 때 헤라의 보복이 두려워 레토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불모의 떠돌이 섬 델로스만이 그녀의 출산을 허락했고, 레토는 그 섬에 하나밖에 없는 나무인 종려나무 아래에서 혼자서 아르테미스를 낳았다. 아르테미스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동생 아폴론을 무사히 분만하도록 도와야 했다. 그로부터 아르테미스는 분만을 돕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출산하는 여인들은 아르테미스에게 순산을 기원했고, 특히 난산일 때는 아르테미스에 의해 생사가 좌우되었다. 아이를 낳다 갑자기 죽는 경우에는 아르테미스가 산모에게 화살을 쏘았다고 믿었다. 또 달빛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여성의 생리와도 관계가 깊다. 아르테미스가 쏘는 화살은 여성만을 맞히는 '달빛의 이미지'로 여성의 생리를 막아 생명을 위협한다. 그러나 '달빛'에는 좋은 면도 있다. 고대인들은 들짐승의 생식과 성장에 달의 주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신들은 이간들이 자신을 모독하는 것을 엄하게 벌했다. 아르테미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아가멤논은 멋진 활 솜씨로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하면서 아르테미스도 이렇게는 못할 거라며 자랑을 했다. 화가 난 아르테미스는 바람을 거두어 트로이 원정을 떠나는 그리스 함대를 묶어놓았다. 원정대장 아가멤논은 자신의 큰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순결의 수호 여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제사가 진행되고 이피게네이아가 제물로 죽게 된 순간 이 처녀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가 갑자기 나타나 처녀 대신 암사슴으로 바꾸어놓고, 이 처녀를 흑해 연안의 타우리스(Tauris)에 있는 자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여사제로 삼았다고 한다. 제사가 끝나자 바람이 다시 일어 원정대는 트로이로 떠날 수 있었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서부 해안 도시 에페소스(Ephesos)는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식민 도시로 교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다. 들짐승의 번식을 주관하는 아르테미스가 이곳에서는 인간의 발육과 성장도 주관하는 '어머니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아르테미스의 '모성'이 확대된 것이다. 아나톨리아 프리기아의 토착신으로 자연의 모든 생식력을 관장하는 '어머니 여신' 키벨레(Kybele)가 아르테미스를 이 지역에 알맞게 동화시켜 인간과 동물의 생식을 주관하는 에페소스 최고의 여신으로 만든 것이다. 부유한 도시 에페소스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어 여신에게 봉헌했다. 그러나 이 신전은 기원전 4세기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기원전 3세기에 재건되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신전으로 평가되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지만 오늘날에는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기둥만이 1973년에 세워져 옛 신전 자리 표시만을 해줄 뿐이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가 '어머니 여신'이란 것을 잘 드러낸 모습은 '큰 아르테미스'와 '작은 아르테미스'라는 두 신상이다. 두 신상의 몸에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젖가슴에 24개의 유방을 갖고 있다. 많은 유방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고대인의 소망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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