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남신은 아폴론이다. 아폴론은 음악과 시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는 또한 미래를 예언하고 병을 고치거나 퍼뜨리기도 한다. 이처럼 아폴론의 역할은 다양하다. 특히 아폴론은 햇빛의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제우스와 레토(Leto)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태어났다. 레토는, 티탄 코이오스(Koios)와 '빛난다'는 뜻의 그의 누이 포이베(Phoibe) 사이에서 아스테리아(Asteria) 다음에 태어난 둘째 딸이다. 레토가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임신하자 헤라는 질투심에 불타 레토의 출산을 방해했기에 어떤 곳에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불모의 떠돌이 섬인 델로스만이 출산을 허락하여 레토는 그 섬에 하나밖에 없는 나무인 종려나무 아래에서 겨우 몸을 풀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가 먼저 세상에 나오고 곧이어 아폴론이 태어났다. 아폴론이 햇빛의 신이기도 한 것은 어머니 쪽으로 별들을 조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폴론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아니다. 아폴론의 햇빛의 신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다. 그는 하늘 신 제우스의 아들로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레토가 아폴론을 낳자 백조들이 섬을 일곱 번 돌았다. 그날이 달의 일곱 번째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백조들이 대양의 북쪽 끝에 있는 항상 맑고 푸른 하늘 히페르보레이오스(Hyperboreios)로 아폴론을 데리고 갔다. 아폴론은 거기서 1년간 머무르면서 주민들의 축복을 받고, 그를 환영하는 축제 속에서 한여름에 그리스로 돌아왔다. 델포이에서는 매년 아폴론의 귀환을 축하했다. 아폴론이 자리를 잡고 신탁을 내리는 곳이 델포이였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아홉 명의 뮤즈들을 지휘하고 몸소 리라를 켜는 등 음악과 시를 주관하면서도, 활을 쏘고 신탁을 내리는 중요한 직분을 수행했다.
아폴론이 델포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세계의 질서와 이치를 상징하는 티탄 테미스의 오래된 신탁을 산속에서 지키는 피톤(Python)이라는 용을 활로 죽여야 했다. 게다가 이 용은 그 지역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었다. 뱀과 용은 어두운 지하 세계의 동물이다. 햇빛의 신인 아폴론은 용을 퇴치해서 그 지역의 악을 제거해야 했다. 용을 죽인 아폴론은 테미스의 비밀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피톤을 죽인 기념으로 '피틱 경기'라는 운동 대회를 만들었다. 처음엔 각 종목의 우승자에게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씌워 주다가 아폴론이 좋아했던 다프네(Daphne)가 월계수로 변한 다음부터는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아폴론은 신전에다 삼각대를 놓고 그 위에 무녀 피티아(Pythia)를 앉혀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도록 했다. 아폴론이 무녀 피티아를 통해 내리는 신탁은 유명했다. 사방에서 델포이의 신탁을 얻으러 왔고 외국에까지 소문이 나서 델포이는 국제적인 종교 중심지가 되었다. 델포이는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했다. 아폴론 신전이 세워진 것은 물론이다.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며칠 밤씩 묵으며 기다려야만 겨우 무녀의 신탁을 얻을 수 있었는데,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이른바 각 지역의 출장소들이 신전으로 올라가는 '신성한 길'가에 줄줄이 서 있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중 한 곳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어 신탁을 얻으러 온 사람들에게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신탁을 기다리는 동안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고 운동 경기도 할 수 있게 신전 위쪽의 산허리에 극장과 육상 경기장이 세워졌는데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한복판에 위치한 델포이는 뽐낼 만했다. 아폴론의 예언은 여기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델포이는 '우주의 배꼽(Omphalos)'으로 자처했고, 그것을 돌로 표현한 '옴팔로스'가 델포이 박물관에 남아 있다. 아폴론 신전은 그가 태어난 델로스 등 여러 곳에 있었고 아폴론 숭배 의식 역시 그리스 전역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예언은 최고 통치자 제우스의 뜻이었기 때문에 아폴론의 위세는 대단했고, 제우스 다음가는 힘을 가진 신으로 숭배되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사건과 일을 제우스 혼자 주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세세한 일들은 아폴론의 예언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게다가 무예도 갖춘 신이라 위력이 있었다.
은 화살을 들고 다니는 아폴론은 격렬하고 잔인했다. 역병을 퍼뜨리는 아폴론의 위세는 『일리아스』 첫 장부터 대단하다. 그러나 아폴론의 화살은 모든 악을 예방하고 퇴치하기 때문에 정의롭고 착한 자를 보호하며, 고통 없이 죽게 하기도 한다. '악을 제거하는' 화살은 태양 빛의 신에 걸맞다. 힘없는 빛의 신은 쓸모없는 추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이 아들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기 전에는 아폴론이 모든 존재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그를 '의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역병을 퍼뜨렸지만, 그리스 군이 그에게 숭배 의식을 올리고 제물을 바치자 질병을 거두어들인다. 질병이라는 악을 정화시킨 것이다. 인간들에게 그는 중병들을 치료해 주는 완전무결한 의사였다. 그의 불은 다른 어떤 불보다 순수했기 때문에 육체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더럽혀진 영혼도 정화하는 힘이 뛰어났다. 사람을 죽인 자를 속죄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의 영혼을 정화해 복수의 여신들로부터 해방시켜 준 일화는 유명하다.
아폴론은 코로니스(Koronis)로부터 얻은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켄타우로스(Kentauros) 케이론(Cheiron)에게 맡겨 의술을 배우게 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에 능통하게 되자 아폴론은 자신이 해오던 의사 역할을 아들에게 넘겼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에피다우로스(Epidauros)에서 '치료'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신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치료를 여러 날씩 기다려야 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의 신전 옆에 기원전 4세기 말 극장이 세워졌다. 이 극장이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야외 공연장으로 쓰이는 에피다우로스 극장이다. 무대로부터 맨 위쪽 관람석까지의 거리가 100미터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무대의 소리가 전 좌석에 고르게 울려 퍼지는 것이 이 극장의 특징이다.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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