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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그리스 신화 - 디오니소스 2

by 미네R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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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하고 노래와 춤에 취해 현실의 각종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디오니소스의 위력은 디오니소스로 하여금 그리스로 다시 귀환해 어머니 세멜레의 고향 테바이로 발길을 잡게 하지만, 테바이의 왕 펜테우스(Pentheus)는 여인들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면서 들판을 뛰어다니게 하는 디오니소스 일행의 통음난무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들의 이른바 '새로운 신앙' 의식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트라케의 리쿠르고스 왕처럼 페테우스는 가혹한 벌을 받았다. 그가 키타이론(Kithairon) 산에서 벌어지는 디오니소스 추종자들의 소란스러운 광경을 몰래 살펴보던 중 자신의 어머니인 아가우에(Agaue)와 다른 여신자들에게 사자로 오인되어 잡혀서 찢겨 죽고 만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열기는 점점 더 퍼져나가 막으려고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아르고스에서는 왕의 딸들이 스스로 암소인 줄 알고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자신들의 아이들마저 잡아먹고 만다. 그리스 전역이 디오니소스의 위력을 받아들였다. 디오니소스 숭배는 극에 달했다. 신 정도의 숭배였다. 그는 자신의 신격화를 눈앞에 두고 어머니 세멜레를 찾으러 저승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영광에 어머니를 동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되찾은 디오니소스는 불멸의 영광을 어머니와 함께 누리기 위해 올림포스로 올라가 위대한 신들의 반열에 자리 잡는다. 그 즈음 아리아드네(Ariadne)는 낙소스(Naxos) 섬에서 잠든 사이에 연인 테세우스가 배를 타고 떠남으로써 버림받은 상태였는데, 때마침 디오니소스가 표범이 끄는 마차를 타고 지나던 중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그는 결혼하자고 설득하여 그녀를 올림포스로 데리고 올라가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 왕관을 선물한다. 이 왕관은 후일 별자리로 변하고, 그들의 결합으로부터 '포도밭'을 뜻하는 '암펠로스(Ampelos)','포도나무'를 뜻하는 '스타필로스(Staphylos)', 술 마시는 사람'을 뜻하는 '오이노피온(Oinopion)'의 세 아들이 태어난다.

디오니소스 신화는 다른 신화들에 비해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디오니소스 신화가 매우 오래된 것이어서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이주할 때 이미 이야기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디오니소스의 유년 시절과 그의 세계 제패는 디오니소스 숭배라는 신앙이 트라케와 다른 곳의 저항을 이겨내면서 전파되는 과정을 우의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신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양상이며, 복음을 전파하는 종교의 모습을 디오니소스의 유랑과 신격화 과정에서 읽을 수 있다.

 

디오니소스 신앙의 핵심은 술과 축제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광란의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져 일상생활의 모든 걱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기쁨과 자유를 구가한다. 이는 모든 지난 일을 함몰시키는 혼수상태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 축제가 벌어지면 여신도들은 가면을 쓰고 억눌린 본능을 마음껏 풀었다. 그들은 '마이나데스' 또는 '바카이(Bacchai)'라고 불렀는데 초기에는 신자들이 대부분 여자들이었지만 점차 남자들도 가담했다. 고대 사회의 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힘든 가사 노동이 여자들로 하여금 쉽게 디오니소스 신앙에 빠져들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재미있고 외설스러운 '코모스(comos)'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나중에 '코미디(comedie)'라는 말로 발전하게 되며, 디오니소스에게 희생 양을 제물로 바치며 부르는 '트라고스(tragos)'라는 노래는 '비극'을 뜻하는 '트라제디(tragedie)'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디오니소스 무리 중 반인반수인 사티로스 주위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발전한 것이 풍자극(drame satyrique)이다. 디오니소스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의 신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디오니소스 신앙에서 술과 춤은 양면성을 가진다. 그것을 통해 자유와 기쁨을 구가해 일상적 삶의 활력을 배가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그것이 주는 자유와 기쁨에 탐닉해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건전한 일상생활을 혐오하고 기피하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지속적인 음주는 병을 부르기 십상이다. 고대인들이 그린 병색이 완연한 디오니소스의 그림이 시사하는 것은 기쁨과 자유가 숨기고 있는 독일 것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신앙과 그 축제가 고대 사회에서 일정한 활력소 역할을 하며 민중 속으로 파고들면서, 가부장적인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포스 신들에 대한 숭배와 절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체계의 억압 요인을 상당 부분 완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술과 춤이 가진 독과 무아지경이 유발하는 일상생활에 대한 혐오감은 극복되어야 했다. 디오니소스의 통음난무가 가져다주는 해방감은 삶의 저속함과 동물성을 통해서 신적인 것을 만나고 그로부터 활력을 찾거나 소생하는 것이지만, 신적인 것을 중시한 나머지 평범한 일상의 규칙과 관행을 혐오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유익하지 못했다. 이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술과 춤의 디오니소스 신앙을 외면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금욕적인 일상생활을 선택하여 '분출'보다는 '금욕'을 택함으로써, 술과 춤이라는 도피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찾은 신앙이 기원전 6세기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삼가는 것을 기본 규칙으로 삼는 오르페우스 신앙의 삶의 양식이다. 통음난무의 디오니소스 신앙과는 정반대의 삶의 방법이다. 건전하지 못하게 흐를 수 있는 디오니소스 신앙의 병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를 차단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신성이 내재되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금욕을 실천하는 자기 정화의 삶을 통해서만 영생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오르페우스 신앙에서 말하는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어린 디오니소스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디오니소스가 있다"라고 한 로마의 키케로의 말처럼, 오르페우스 신앙의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와 제우스의 아들인 통음난무의 디오니소스와는 다르다. 디오니소스의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 때문에 서로 다른 디오니소스가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나누자면 두 종류의 디오니소스밖에 없다.

제우스가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어린 디오니소스에게 지배권을 넘겨 주려고 하자 헤라의 사주를 받은 티탄들이 디오니소스를 죽여 심장만 빼고 삶거나 구워 먹는다. 격분한 제우스는 벼락을 쳐서 티탄들을 재로 만든다. 이 재에서 태어난 것이 인간이며, 인간에게는 티탄의 악한 성격과 티탄이 먹은 디오니소스의 신성이 함께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 오르페우스 신앙의 출발점이다. 신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달라 인간은 결코 신의 자리를 넘볼 수 없으며, 정기적으로 신에게 제사와 재물을 올려야 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오랫동안 믿어온 기존의 신앙 체계를 오르페우스 신앙은 뒤흔들어 놓았다. 게다가 영혼은 불멸하기 때문에 티탄의 악한 본성이 깃든 인간들은 매일매일의 금욕과 자기 정화를 통해서 악한 구석을 털어내고 신성만 간직한 채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구원'의 '희망'을 심어준 오르페우스 신앙은, 가부장적인 올림포스 신앙의 틀을 뒤흔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고대의 사회 제도와 관습 체계에 '구원의 종교'를 등장시킴으로써 신앙과 인간 의식의 문제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한편 50세기 초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는 '오르피즘(Orphisme)'이라는 말을 회화의 전통과 관행을 '위반'하는 로베를 들로네 같은 화가들의 그림에 적용했다. 그것은 회화사나 미학에서의 '파격'과 '위반'을 뜻하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앙과는 직접 관계가 없지만, 오랜 관습과 관행을 '위반'하며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는 적절히 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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