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세계와 죽은 사람들의 왕 하데스(Hades)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형이다. 티탄들과 맞서 싸울 때 하데스는 키클롭스 형제들로부터 황금 투구 '키네에'를 받았다. 이 투구를 쓰는 자는 다른 자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아테나와 헤르메스, 영웅 페르세우스가 이 투구를 빌려 썼다. '하데스'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투구와 함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저승의 염라대왕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냉혹하기 가차 없는 하데스는 나쁜 짓이나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두려운 존재였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불길했고, 사람들은 그를 완곡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풍요'를 뜻하는 '플루토스(Plutos)'나 '플루톤(Pluton)'이다. 그것은 죽은 자들로 '풍요로운' 지하 세계를 뜻하기도 했지만, '풍요로운' 광물로의 보고로서의 지하 세계와 땅에서 비롯되는 다산성의 '풍요'를 뜻하기도 했다. 핵연료인 플루토늄도 '플루토스의 광물'이라는 뜻이다. 플루토스는 보통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풍요의 신 플루토스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풍요의 뿔에 손만 넣으면 무엇이든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승의 신 하데스를 완곡하게 '풍요'의 신으로 부른 그리스인들은, 저승으로 죽은 자들의 넋을 싣고 가는 뱃사공도 '기쁨'이라는 뜻의 '카론(Charon)'이라고 부름으로써 동일한 반어법이나 완곡한 어법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저승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렇게 불렀을까? 하데스에 관한 설화는 저승을 싫어한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듯 매우 빈약하다.
하데스는 데메테르의 딸 코레를 납치해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의 지하 왕국의 왕비로 삼았으나 둘 사이에는 자손이 없었다. 죽음의 신에게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번은 요정 멘테(Menthe)와 관계했는데 페르세포네의 질투와 학대를 견디다 못해 하데스가 그녀를 박하 나무(methe)로 변하게 해주었다. 두 번째 사랑은 오케아노스의 딸 레우케(Leuke)였는데 그녀를 지하 세계로 데려오다가 불사의 몸이 아닌 그녀는 죽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하데스는 그녀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그녀를 흰 포플러스나무로 변신시켜 덕망 있는 사람들의 망령이 행복하게 산다는 샹젤리제의 '기억'의 강가에 심었다.
하데스의 지하 궁전 입구는 케르베로스(Kerberos)라는 괴견이 지키고 있었다. 머리가 셋이고 뱀의 꼬리를 가진 이 개는 등줄기에 수많은 독사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이 개가 지키는 하데스의 지하 왕국을 다녀온 인간은 모두 여섯 명이다. 첫 번째는 시와 음악의 달인 오르페우스였고, 두 번째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였으며, 세 번째는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였다. 네 번째는 술을 처음으로 만든 디오니소스였고, 다섯 번째는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자 트로이인으로 로마인의 조상이 된 영웅 아이네이아스였고, 여섯 번째는 프시케(Psyche)였다.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하데스에게 노래로 호소해 승낙을 얻어냈지만, 지상으로 넘어오기 직전에 '뒤를 바라보지 말라'라는 당부를 어기는 바람에 아내를 다시 잃고 말았다. 테세우스는 그의 절친한 친구 페리토오스(Peirithoos)와 함께 만용을 부려 하데스의 왕국을 찾았는데, 하데스는 그들을 환대하는 척하면서 '망각의 의자'에 앉혔다. 이 의자에 앉으면 몸이 의자에서 떨어지질 않고 모든 것을 잊게 되어 있었다. 꼼짝없이 포로로 붙잡혀 있던 두 친구는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에 왔을 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신들은 테세우스만을 돌려보내기로 결정해 페이리토오스는 영원히 붙잡혀 있어야 했다.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로 내려간 것은 지하 궁전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잡아 오라는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는 케르베로스와 맨손으로 싸워 이겨 괴견을 붙잡아서 지상 세계로 올라온다. 네 번째 디오니소스는 일찍 죽은 가련한 어머니 세멜레를 찾으러 내려갔으며, 다섯 번째 아이네이아스는 무녀 시빌라와 '황금 가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영혼의 운명을 터득하는 통과 의례와 앞으로 세워질 로마의 운명을 예감하기 위해 지하 세계로 여행을 한다. 그 여행은 로마의 대표적인 무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섯 번째 프시케는, 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태어나 로마의 저명한 문인이 된 아풀레이우스(Apuleius)의 『변신 혹은 황금 나귀』의 여러 에피소드들 중 하나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비너스의 명령에 따라 지하 세계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서 젊음의 화장수 한 병을 얻으러 내려갔다. 지상 세계로 돌아온 그녀는, 병을 열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못 이겨 화장수 병을 열었다. 그러자 병으로부터 '깊은 잠'이 빠져나와 프시케를 죽은 사람처럼 깊게 잠들게 했다. 프시케를 잊지 못한 그녀의 남편 '에로스'만이 화살을 쏘아 '마법의 잠'에서 깨울 수 있었다.
어두운 지하 세계의 왕답게, 하데스는 지상 세계에는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은 데메테르의 딸 코레를 납치하러 올라갔고 또 한 번은 포세이돈의 쌍둥이 아들을 도우러 필로스(Pylos)에 올라갔는데, 이때의 전투에서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어깨에 맞지만 올림포스로 올라가서 '경이로운 연고'로 치료받고 곧 회복되었다.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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